
얼마 전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유튜버가 도시락을 만드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주로 음식 카테고리의 콘텐츠를 살피는 나에게 아주 적절한 추천이 아닐 수 없기에 영상 한 편을 보며 곧바로 구독했다. 영상 속 주인공은 매일 아침 유치원생인 딸 아이를 위하여 도시락을 챙기고 있다. 도시락 반찬 요리를 촬영하는데, 대부분의 재료는 계란, 시라스(정어리 치어), 당근, 낫토, 오뎅과 같이 집 앞 시장이나 마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꾸려진다. 구하기 어려운 재료나 화려한 조리 도구를 사용하지 않음에도 작은 도시락 통을 푸짐히 구성하는 능력이 뛰어난 분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은 담뿍 담아내고, 꺼려하는 음식은 입맛에 맞아가도록 여러 가지 재료를 활용해 조리를 시도한다.
영화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2017)에도 도시락이 등장한다. 새로운 사랑을 찾겠다며 가출을 일삼던 엄마가 또 가출해버리자 토모는 익숙하게 외삼촌 마키오를 찾아간다. 그리고 마키오의 집에서 그와 함께 살고 있는 연인인 린코를 만난다. 린코는 트랜스젠더였다. 토모는 그녀를 어색해하지만 린코는 정성껏 식사를 준비하는 등 자신의 자리에서 진심을 다하여 대한다. 한 날은 토모를 위한 귀여운 도시락을 준비하기도 한다. 고양이 주먹밥에 문어 모양 소시지가 들어간, 그러니까 토모의 입장에서 볼 때는 엄마로부터 받아보지 못한 따뜻한 사랑이 담긴 도시락 말이다. 토모는 린코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진실로 이어진 관계를 쌓아간다. 세 사람은 벚꽃 나들이도 함께 가는데, 린코는 일전에 토모가 먹고 싶다고 했던 바지락 간장 조림과 무말랭이 무침이 담긴 도시락을 준비한다. 옹기종기 모여 사는 세 사람을 의미하는 듯, 줄줄이 엮인 세 개의 물고기 소시지는 토모의 손을 통해 들어 올려진다. 이어지는 토모의 미소는 마음에 남겨진 많고 많은 상처 중 하나가 아물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도시락에는 사랑이든, 응원이든, 힘이든, 크기나 무게와 관계없이 모두 담긴다. 그래서 도시락 뚜껑을 열어 단단하게 자리 잡은 음식을 마주하는 순간, 마법 주문에 걸린 것처럼 마음이 일렁인다. 도시락을 준비한 사람의 속일 수 없는 정성과 진심이 반짝, 빛났기 때문이리라.
누군가를 향한 진심은 스스로를 지지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린코가 자신을 흔들던 번뇌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그저 덤덤하게 엮은 뒤, 마침내 진정한 사랑만을 도시락에 담은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도시락이 필요했다. 마음이 허하고 고픈 날이면 속 깊이 챙겨둔 믿음의 한 숟갈을 뜰 수 있는 단단한 도시락. 아무래도 린코의 힘을 따라해 나를 위한 도시락을 챙겨봐야겠다고 다짐해보는데… 아, 일단 쌀부터 씻어야겠다.

ⓒ 디스테이션
주혜린 @sandwichpress.kr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공부를 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의지가 이끄는 것을 수집하고 탐구하는 출판사 샌드위치 프레스를 운영 중이다.
얼마 전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유튜버가 도시락을 만드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주로 음식 카테고리의 콘텐츠를 살피는 나에게 아주 적절한 추천이 아닐 수 없기에 영상 한 편을 보며 곧바로 구독했다. 영상 속 주인공은 매일 아침 유치원생인 딸 아이를 위하여 도시락을 챙기고 있다. 도시락 반찬 요리를 촬영하는데, 대부분의 재료는 계란, 시라스(정어리 치어), 당근, 낫토, 오뎅과 같이 집 앞 시장이나 마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꾸려진다. 구하기 어려운 재료나 화려한 조리 도구를 사용하지 않음에도 작은 도시락 통을 푸짐히 구성하는 능력이 뛰어난 분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은 담뿍 담아내고, 꺼려하는 음식은 입맛에 맞아가도록 여러 가지 재료를 활용해 조리를 시도한다.
영화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2017)에도 도시락이 등장한다. 새로운 사랑을 찾겠다며 가출을 일삼던 엄마가 또 가출해버리자 토모는 익숙하게 외삼촌 마키오를 찾아간다. 그리고 마키오의 집에서 그와 함께 살고 있는 연인인 린코를 만난다. 린코는 트랜스젠더였다. 토모는 그녀를 어색해하지만 린코는 정성껏 식사를 준비하는 등 자신의 자리에서 진심을 다하여 대한다. 한 날은 토모를 위한 귀여운 도시락을 준비하기도 한다. 고양이 주먹밥에 문어 모양 소시지가 들어간, 그러니까 토모의 입장에서 볼 때는 엄마로부터 받아보지 못한 따뜻한 사랑이 담긴 도시락 말이다. 토모는 린코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진실로 이어진 관계를 쌓아간다. 세 사람은 벚꽃 나들이도 함께 가는데, 린코는 일전에 토모가 먹고 싶다고 했던 바지락 간장 조림과 무말랭이 무침이 담긴 도시락을 준비한다. 옹기종기 모여 사는 세 사람을 의미하는 듯, 줄줄이 엮인 세 개의 물고기 소시지는 토모의 손을 통해 들어 올려진다. 이어지는 토모의 미소는 마음에 남겨진 많고 많은 상처 중 하나가 아물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도시락에는 사랑이든, 응원이든, 힘이든, 크기나 무게와 관계없이 모두 담긴다. 그래서 도시락 뚜껑을 열어 단단하게 자리 잡은 음식을 마주하는 순간, 마법 주문에 걸린 것처럼 마음이 일렁인다. 도시락을 준비한 사람의 속일 수 없는 정성과 진심이 반짝, 빛났기 때문이리라.
누군가를 향한 진심은 스스로를 지지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린코가 자신을 흔들던 번뇌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그저 덤덤하게 엮은 뒤, 마침내 진정한 사랑만을 도시락에 담은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도시락이 필요했다. 마음이 허하고 고픈 날이면 속 깊이 챙겨둔 믿음의 한 숟갈을 뜰 수 있는 단단한 도시락. 아무래도 린코의 힘을 따라해 나를 위한 도시락을 챙겨봐야겠다고 다짐해보는데… 아, 일단 쌀부터 씻어야겠다.
ⓒ 디스테이션
주혜린 @sandwichpress.kr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공부를 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의지가 이끄는 것을 수집하고 탐구하는 출판사 샌드위치 프레스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