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게 어림잡아도 일주일에 세 번은 만두를 먹습니다. 물리지 않는 이 맛. 이 쫀득하고 뜨겁고 물컹거리는 음식을 계속 먹고 싶다는, 지극히 순수하고 단순한 욕구에 충실한 나날들이 퍽 맘에 듭니다. 분명 방금 까지 한여름이었는데 만두전골 한 냄비 하고 나오니 가을이 왔고, 연태고량주에 군만두 몇 접시 곁들이다 보니 어느새 겨울이 왔습니다. 특별히 좋은 일은 없지만 궤도를 수정하고 따라가보는 지금의 저는 확실히 잘먹고 잘사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물론 가끔 다시 직장에서 일할 수 있을까, 또다시 서로를 보살필 줄 아는 좋은 동료들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도 있지만, 만두 한그릇을 비우는 저녁이면 고민들은 모락모락 피어나는 수증기처럼 날아가버립니다.
전국을 쏘다니는 자타공인 불나방답게 친척도 친구도 없지만 이상하게 아련하고 애틋한 부산이 좋아 또다시 부산을 찾았습니다. 매번 여행을 혼자 떠날 때면 수서역 대기실에 앉아 이런 다짐을 하곤 합니다 '이 여행은 애인이 없는 마지막 여행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빛이 나는 솔로의 여행이다!'
부산역에 도착해 길 하나를 건너면 화상 노포가 가득한 만두의 성지 차이나타운에 도착합니다. 첫번째 만두성지순례의 목적지는 '신발원'. 상호부터 기세가 대단합니다. 마! 다 기세다! 오후 3시라는 애매한 시간이 무색하게도 웨이팅을 해야하는 만두집. 오후 3시에 기다리다 먹는 만두라니 어딘지 모르게 뭔가 나른하고 포근합니다. 보기만해도 푸근한 미소가 입가에 피어나고 젓가락에 닿는 포근한 피가 쫀득한 고기만두가 테이블에 오릅니다. 만두피 위까지 고여있는 달큰한 육즙이 찰랑찰랑. 이런 고인물이라면 언제나 대환영입니다 묵직한 무게감, 포슬포슬한 만두를 한입에 넣으니 달큰한 짠맛이 입 속에 퍼지는게 언젠가 늦은밤 방어를 먹고 나온 횟집 앞에서의 키스의 맛이 떠오릅니다. 고기만두에 새우만두 그리고 우롱차까지 풍족한 식사를 마치고 다시 걷기 시작합니다.
맑은 날씨, 맑은 기분 넘실거리면서도 사람 냄새, 달큰한 떡볶이와 튀김 냄새가 가득한 시장 쪽으로 향합니다. 내려야 하는 역을 두 정거장 지난 장산역, 반대편으로 올라가기 위해 터질 것 같은 캐리어를 끌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차 였습니다. 파 두단이 삐죽 튀어나온 장바구니를 들고 계시던 할머님이 "에이 또 잘 못탔네..또.." 라며 혼잣말을 하던 제게 "잘못탔어?, 괜찮어 우리 다 실수 하고 사는거지. 반대 타면 가! 금방 가." 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별안간 눈물이 나와 버렸습니다. 별 일 아니다. 괜찮다 하시는 할머니의 한마디에 마음이 녹아버려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안녕히 가세요!' 라며 급히 엘레베이터를 빠져나와버렸습니다.
떡볶이랑 만두 먹으러 가다가 울어 보셨나요?
참고로, 그럼 더 맛있어 집니다.
저 멀리서부터 알아볼 수 있는 수증기 반 사람 반으로 북적이는 '반수영팔도할매떡볶이'에 도착했습니다. 빨간색은 떡볶이, 노란색은 오뎅, 흰색은 물떡, 노릇노릇한 노란색은 방금 기름 샤워를 마치고 나온 군만두. 적당히 매콤하고 달달한 동네 분식집 쌀떡볶이 국물에 흠뻑 묻혀주는 통통한 오뎅과 군만두를 한참 즐기다 우연히 보게된 주인 할머니의 손 등. 칼 자국과 데인 자국이 선명한 손등으로 얼마나 오랜 세월 음식을 데우고 먹이셨을까요. 다 먹고 자리를 떠나는 제게 ‘잘 가시오’ 라며 특유의 시크한 인사가 전해옵니다.
어린시절 일찍 돌아가신 우리 개봉동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지만, 개나리를 참 좋아하셨고 그만큼이나 절 참 좋아해주셨다는 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할머니댁은 봄이 오면 개나리 꽃대궐로 변해 동네 초입에서부터 알아볼 수 있었죠. 당신이 좋아하던 봄에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오늘만큼은 할머니가 나의 고픈 마음과 배를 채워준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지고 싶었습니다.
그날 밤 나는 오늘 하루동안 만난 할머니들을 떠올리며, 숙소의 작은 침대에 누워 바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성공한 삶보다 비교적 높은 가능성으로 행복할 것 같아 그렇습니다.



ⓒ 만오데
만오데 @mandoo_of_the_day
7년간 성실히 회사와 집을 오가다 ‘더 이상 이렇게는 싫어’를 외치곤 돌연 퇴사, 황홀한 갭이어를 보내고 있다. 지붕 아래 똑같은 만두와 돈까스가 없다는 생각으로 조선팔도를 뚜벅이로 먹어내고, 걸어내는 중이다. 배 빵빵 마음 빵빵한 풀자극의 시절이 퍽 마음에 든다.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하는 삶을 꿈꾸며 운을 모으고 있다.
적게 어림잡아도 일주일에 세 번은 만두를 먹습니다. 물리지 않는 이 맛. 이 쫀득하고 뜨겁고 물컹거리는 음식을 계속 먹고 싶다는, 지극히 순수하고 단순한 욕구에 충실한 나날들이 퍽 맘에 듭니다. 분명 방금 까지 한여름이었는데 만두전골 한 냄비 하고 나오니 가을이 왔고, 연태고량주에 군만두 몇 접시 곁들이다 보니 어느새 겨울이 왔습니다. 특별히 좋은 일은 없지만 궤도를 수정하고 따라가보는 지금의 저는 확실히 잘먹고 잘사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물론 가끔 다시 직장에서 일할 수 있을까, 또다시 서로를 보살필 줄 아는 좋은 동료들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도 있지만, 만두 한그릇을 비우는 저녁이면 고민들은 모락모락 피어나는 수증기처럼 날아가버립니다.
전국을 쏘다니는 자타공인 불나방답게 친척도 친구도 없지만 이상하게 아련하고 애틋한 부산이 좋아 또다시 부산을 찾았습니다. 매번 여행을 혼자 떠날 때면 수서역 대기실에 앉아 이런 다짐을 하곤 합니다 '이 여행은 애인이 없는 마지막 여행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빛이 나는 솔로의 여행이다!'
부산역에 도착해 길 하나를 건너면 화상 노포가 가득한 만두의 성지 차이나타운에 도착합니다. 첫번째 만두성지순례의 목적지는 '신발원'. 상호부터 기세가 대단합니다. 마! 다 기세다! 오후 3시라는 애매한 시간이 무색하게도 웨이팅을 해야하는 만두집. 오후 3시에 기다리다 먹는 만두라니 어딘지 모르게 뭔가 나른하고 포근합니다. 보기만해도 푸근한 미소가 입가에 피어나고 젓가락에 닿는 포근한 피가 쫀득한 고기만두가 테이블에 오릅니다. 만두피 위까지 고여있는 달큰한 육즙이 찰랑찰랑. 이런 고인물이라면 언제나 대환영입니다 묵직한 무게감, 포슬포슬한 만두를 한입에 넣으니 달큰한 짠맛이 입 속에 퍼지는게 언젠가 늦은밤 방어를 먹고 나온 횟집 앞에서의 키스의 맛이 떠오릅니다. 고기만두에 새우만두 그리고 우롱차까지 풍족한 식사를 마치고 다시 걷기 시작합니다.
맑은 날씨, 맑은 기분 넘실거리면서도 사람 냄새, 달큰한 떡볶이와 튀김 냄새가 가득한 시장 쪽으로 향합니다. 내려야 하는 역을 두 정거장 지난 장산역, 반대편으로 올라가기 위해 터질 것 같은 캐리어를 끌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차 였습니다. 파 두단이 삐죽 튀어나온 장바구니를 들고 계시던 할머님이 "에이 또 잘 못탔네..또.." 라며 혼잣말을 하던 제게 "잘못탔어?, 괜찮어 우리 다 실수 하고 사는거지. 반대 타면 가! 금방 가." 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별안간 눈물이 나와 버렸습니다. 별 일 아니다. 괜찮다 하시는 할머니의 한마디에 마음이 녹아버려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안녕히 가세요!' 라며 급히 엘레베이터를 빠져나와버렸습니다.
떡볶이랑 만두 먹으러 가다가 울어 보셨나요?
참고로, 그럼 더 맛있어 집니다.
저 멀리서부터 알아볼 수 있는 수증기 반 사람 반으로 북적이는 '반수영팔도할매떡볶이'에 도착했습니다. 빨간색은 떡볶이, 노란색은 오뎅, 흰색은 물떡, 노릇노릇한 노란색은 방금 기름 샤워를 마치고 나온 군만두. 적당히 매콤하고 달달한 동네 분식집 쌀떡볶이 국물에 흠뻑 묻혀주는 통통한 오뎅과 군만두를 한참 즐기다 우연히 보게된 주인 할머니의 손 등. 칼 자국과 데인 자국이 선명한 손등으로 얼마나 오랜 세월 음식을 데우고 먹이셨을까요. 다 먹고 자리를 떠나는 제게 ‘잘 가시오’ 라며 특유의 시크한 인사가 전해옵니다.
어린시절 일찍 돌아가신 우리 개봉동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지만, 개나리를 참 좋아하셨고 그만큼이나 절 참 좋아해주셨다는 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할머니댁은 봄이 오면 개나리 꽃대궐로 변해 동네 초입에서부터 알아볼 수 있었죠. 당신이 좋아하던 봄에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오늘만큼은 할머니가 나의 고픈 마음과 배를 채워준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지고 싶었습니다.
그날 밤 나는 오늘 하루동안 만난 할머니들을 떠올리며, 숙소의 작은 침대에 누워 바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성공한 삶보다 비교적 높은 가능성으로 행복할 것 같아 그렇습니다.
ⓒ 만오데
만오데 @mandoo_of_the_day
7년간 성실히 회사와 집을 오가다 ‘더 이상 이렇게는 싫어’를 외치곤 돌연 퇴사, 황홀한 갭이어를 보내고 있다. 지붕 아래 똑같은 만두와 돈까스가 없다는 생각으로 조선팔도를 뚜벅이로 먹어내고, 걸어내는 중이다. 배 빵빵 마음 빵빵한 풀자극의 시절이 퍽 마음에 든다.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하는 삶을 꿈꾸며 운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