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먹어도 맛있습니다]#6 마트&마켓컬리, 나와 나의 두뇌 싸움 ‘장 보기’ / 정지음

2022-05-25


어릴 때는 엄마 따라 대형 마트 가는 일을 광적으로 즐겼다. 다른 자매들은 혹여 같이 가게 될까봐 숨곤 했는데, 나는 엄마가 몰래 마트에 가려는 것도 귀신 같이 알아채고 따라 붙었다. 그때는 마트가 내 소유의 곳간처럼 보였다. 일단 카트에 담아 두면 실제로 내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빙 돌리고 있지만, 배덕하게 말하자면 엄마 돈이 돈 같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내 돈을 벌어 쓰는 지금은 마트라는 공간이 고통스럽고 부담스럽기만 하다. 나는 조금의 식료품을 얻는 대가로 너무 많은 비용을 내는 것 같다. 실제로 요즘은 마트 한 번 다녀오면 5-10만원이 우습게 사라진다. 


마트는 단순한 물건값 외에도 많은 계산을 요구한다. 상품이 다양할수록 비교대조군도 많아져 가격 외에도 그램(g) 수, 영양 성분, 원산지, 행사 여부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현명하게 장 보는 과정에는 아주 많은 골치와 암산 실력이 소요된다. 신은 내게 글을 다루는 능력을 약간 주고 셈을 다루는 능력을 전부 앗아갔기 때문에, 나는 종종 마트 냉장고 근처에 우두커니 선 채 사칙연산의 미아가 되고 만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내가 '마켓컬리' 어플 안에서는 거의 희열을 느낀다는 점이다. 사실 마켓컬리는 (우리 동네 마트 기준으로) 식료품의 양이 적고 가격은 조금 더 비싸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편리하다. 1인 가구인 나는 많은 양을 싸게 얻어봤자 소진을 못해 썩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냉장고 야채 칸 속에서 오이즙이 되어가는 오이, 욕실 물때 같은 핑크색을 띄며 시들어가는 푸성귀, 지독한 냄새와 함께 상해가는 고기들은 내게 두려울 정도의 죄책감을 안겨 주고 있다. 고작 내 식탁에 오르기 위해 죽음을 맞이한 동식물들에게 더없이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어쨌든 다년간의 자취 생활을 통해 나는, 급하게 먹어 치우느니 애초에 먹어서 치워야 할 것들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하여 단가가 조금 세더라도 음식물 쓰레기 발생 위험이 줄어드는 마켓컬리 구매를 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날의 마켓컬리는 지루한 넷플릭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온 몸의 모세혈관(?)을 바짝 긴장시키며 첨예하게 장바구니를 꾸리다 보면, 갑자기 알 수 없는 허무함이 찾아 오고, 두 시간 내내 이것만 들여다보고 있는 내가 이상해지는 것이다. 결국 자기 전 넷플릭스를 켜고 하염없이 목록만 훑다 지쳐 잠드는 날처럼 마켓컬리 어플을 끄게 된다. 이런 날은 '나와 나의 두뇌 싸움'에서 두 명의 내가 전부 패배한 날이다. 그렇게 따지면 장 보기에 소요되는 가장 큰 비용은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돈을 아끼는 능력은 결국 결단력이구나 생각하면서, 오늘도 텅 빈 냉장고를 뒤져 시들시들한 생고구마 하나를 깎아 먹고 잠든다. 


지금까지 정지음의 <혼자 먹어도 맛있습니다>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를 클릭하시면, <혼자 먹어도 맛있습니다>의 연재분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정지음 @jee_umm

작가. 1992년 5월 출생. 에세이 『젊은 ADHD의 슬픔』『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를 썼습니다. 일년의 반은 대충 먹고 나머지 반은 공들여 먹습니다. 먹는 일에 기쁨과 피로를 동시에 느끼며 살아가는 1인 가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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