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롭거나 말거나]#3 맛 없어도 괜찮아 / 정재민

2021-07-07


흔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긴 쉽지 않다. 겉이 버석하게 마른 빵에 힘없는 양상추나 루꼴라 몇 장, 얇디얇은 토마토가 들어간 샌드위치가 대부분이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샌드위치를 주문한다. 


"햄 치즈 파니니 하나랑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 "손님, 런치 세트로 가능하셔서 1,000원 할인됩니다~"

"아… 네…"

- "(카드를 돌려주며) 진동벨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축 처지는 주문을 끝내고 터덜터덜 등을 기댈 수 있는 자리에 걸어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는다. 자리에서 습관적으로 인스타그램을 구경하다가 징징 울리는 진동벨에 푸드덕 놀라며 샌드위치와 커피를 찾아온다. 이제 이어폰을 꽂고, 유튜브를 켜고는 시선은 핸드폰 화면에 고정한 채로 메마른 샌드위치를 베어 문다. 분명 맛없는데, 놀랍게도 맛없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내가 이러는 건 가끔은 미각이 잠시 영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뇌가 혀에 "오늘은 좀 조용히 지내자. 네 주인이 맛을 느낄 힘도 없대."라고 명령한 것처럼 말이다. 그저 의자에 기대서 널브러져 있고 싶을 정도로 휴식이 필요해서 혼자 카페를 찾았고, 배는 고프니 뭐라도 식사는 해결하려고 샌드위치를 주문하는 것뿐이다. 모든 식사에 어떻게 열정적으로 대할 수 있으랴. 어떤 식사는 해치워야 할 과제와 같아서 구몬 숙제하듯이 대충 처리하고 넘겨버리기 마련이다. 


도망갈 곳이 필요한 수많은 현대인에게 카페란 얼마나 소중한 공간인가. 이유 없이 심신이 지칠 때, 일에 시달려서 머리가 지끈지끈할 때, 사람과 대화하기 싫을 때 등 혼자가 되고 싶은 이유는 다양하다. 이런 우리가 가장 손쉽게 혼자가 될 수 있고, 조용히 쉬다 갈 수 있는 곳은 카페이며, 그중에서도 샌드위치를 파는 곳은 더더욱 소중하다. 충분히 쉴 수도 있고, 동시에 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그냥 빵이 아니라 샌드위치를 파는 카페여야 한다는 점이다. 한 번은 회사 근처 카페에 혼자 쉬러 갔는데, 샌드위치는 없고 마들렌이나 파운드케이크 한쪽 정도만 판매하고 있었다. 샌드위치가 없다니! 어쩔 수 없이 그나마 배를 채울 것 같은 파운드케이크를 주문했는데, 한 입 먹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미각이 휴업한 상태라고 해도 '한국 사람은 밥을 먹어야지'와 비슷하게 '아무리 입맛이 없어도 식사 느낌은 나야지!'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다. 밥과 반찬 대신 빵과 양상추, 햄, 치즈 정도는 먹어줘야 한 끼 식사라고 부를 수 있는데, 파운드케이크 한 조각은 그냥 빵 뿐이라 영 서운했다. 그런 의미에서 샌드위치는 3대 영양소를 나름 챙겨 먹을 수 있어서 그래도 고마운 음식이다. 맛이  없더라도.


다 먹고 나서 카페를 나설 때쯤 고개를 들어 쓱 둘러보면 나와 같이 혼자 영혼 없이 샌드위치를 우적우적 씹어 먹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이구나 하는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그리고 간편하게 혼자만의 식사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는 샌드위치에 고마움을 느끼며 카페를 나선다. 


정재민 @jam.in

먹고 마시기 위해 사는 사람. 직장인들이 슬기롭게 점심시간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점심 메뉴와 대화 소재를 추천해주는 뉴스레터 <슬기로운 점심시간>을 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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