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꽂히고 말았다]#2 셀프로 만들어도 기쁜 선물, 솥밥 / 김호

2021-06-25


라멘에 이어 최근에 새로 꽂힌 메뉴는 솥밥이다. 어떤 재료를 넣는지에 따라 맛과 비주얼이 완전히 달라지는 솥밥은 묵직한 솥뚜껑을 열기 직전까지 정확한 정체를 알 수 없어 더 재밌는 요리다. 작년, 스시야 오마카세의 피날레로 솥밥이 나오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선물상자를 풀어헤치기 바로 직전처럼 두근거리는 기분을 스시야 솥밥에서 느낄 줄은 몰랐는데! 평소 솥밥에 대해 특별한 감흥이 없던 내게 그날 이후 묘한 동경이 자리 잡았다.


솥밥을 좋아하게 된 것과 별개로 라멘집처럼 투어를 하진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해야 할까? 라멘에 비하면 전문점도 많지 않거니와 가격 역시 편하진 않으니까. “좋은 날 가야지” 의 마음으로 맛있어 보이는 가게를 점찍어뒀을 뿐.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 역시 다른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집에 스시야에서 나올 법한 좋은 솥도 없고 금태, 장어, 전복 같이 솥밥과 잘 어울리는 재료를 손질할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요리를 정식으로 배우면 만들어봐야지.’ 마음으로 직접 만드는 건 미루고 있던 차, 유튜브 <정창욱의 오늘의 요리>에서 정창욱 셰프가 양은 냄비로 뚝딱 솥밥을 만드는 것을 보게 되었다. 심지어 재료도 콩나물, 완두콩, 치킨 등으로 아주 간결했는데 맛스러워 보이는 비주얼만큼은 스시야 솥밥 못지않았다. 가만 생각해보니 잘 지어진 밥은 그 어떤 부재료든 품어줄 수 있는 너그러운 친구인데, 내가 너무 편협했다.


그날 이후, 딱히 생각나는 음식이 없으면 솥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뚝배기에 밥과 물을 1:1 비율로 맞춘 뒤 불을 올린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가장 약한 불로 바꾸고 17분만 놔두면 비싼 전기밥솥이 무색할 만큼 고슬고슬하고 맛있는 밥이 뚝딱 완성된다. 


아스파라거스, 관자, 콩나물, 고사리, 소고기 등 다양한 재료로 솥밥을 만들어먹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치킨솥밥이다. 물과 밥을 1:1 비율로 넣고 전날 먹고 남은 프라이드 치킨을 올린 뒤, 간장 한 스푼, 미림 한 스푼을 넣고 조리하면 끝이다. (정창욱 셰프의 유튜브에서 배운 레시피이다.)


행복을 안겨주는 치킨 껍질의 기름진 맛과 살이 머금고 있던 육즙이 자연스럽게 밥에 배어 나오는데… 양념치킨 매니아도 다음번에 후라이드 치킨을 시켜야 하나 고민하게 될 정도로 훌륭한 맛이다. 전날, 치킨을 먹을 때 ‘몇 조각을 남겨야 할까?’ 하는 선택의 순간을 거쳐야 하지만 완성된 솥밥의 뚜껑을 여는 순간 선물 같은 보답이 펼쳐질 테니. 이 글을 읽는 분이라면 꼭 한 번 도전해보시길!


ⓒ김호


김호 @gomdolgoon

식문화에 관심이 많은 일러스트레이터. 일러스트레이션 기반의 디자인 스튜디오 '스튜디오 블랙아웃'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마켓컬리, SK, 삼성 등 다수의 클라이언트와 함께 작업했습니다. 2015년 독립출판으로 『맥주도감』을 펴낸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술에 대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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