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롭거나 말거나]#1 우리 엄만 매일 내게 말했어. 언제나 식탐 조심하라고. / 정재민

2021-06-09


"어디 나가서 식탐 부리고 그러면 안 된다." 블랙핑크의 <불장난>에서는 엄마가 "언제나 남자 조심하라고" 딸에게 충고해주었다지만, 나는 식탐을 조심하라고 배웠다. 먹성 좋은 딸이 혹여라도 입 안 가득 음식을 넣은 채로 앞접시에 허겁지겁 음식을 덜고 있을까 봐 걱정하셨겠지. 엄마의 신신당부로 밖에 나가서 뭘 먹을 때면 조심하려고 애썼다. 음식을 돌같이 보는 건 도저히 못 하겠고, 회사 근처 새로운 맛집을 뚫는다거나 뷔페에 가면 이것저것 조합해보면서 새로운 메뉴를 창작해낸다거나 하는 식으로 음식에 대한 사랑을 간접적으로 표현해 왔다.  


그러다가 식탐이 스멀스멀 올라와 떡볶이와 순대를 다 먹고 싶은 날이면 동네 분식집에서 '떡순이'를 먹는다. 생소할 수도 있는 이 메뉴는 떡볶이와 순대를 1인분으로 구성해서 한 접시에 담아주는 분식집계의 짬짜면인데,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은 나의 식탐을 잠재우기에 딱 맞는 메뉴이다. 세상엔 숨길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기침, 가난 그리고 사랑. 그렇다. 떡볶이와 순대에 대한 나의 사랑 역시 숨겨지지 않았고, 떡순이로 어떻게든 충족시켜줘야 했다.


내 경우에는 음식에 대한 사랑이었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애인, 아이돌, 영화 등 다양한 대상을 탐하고 있다. 무언가를 탐한다는 건 금기시되기도 하는데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언가 탐하고 있다고 바깥으로 말하는 게 부끄러운 일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하는 걸 이 동네 저 동네 말하고 다니면 자다가도 떡이 떨어진다. 내가 한창 미니언이라는 캐릭터에 빠져서 매일 바나나 송을 부르고 다녔을 때 친구가 내 생각이 나서 샀다며 미니언 장난감을 선물해주었던 것처럼. 내가 뭘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건 내 캐릭터를 주변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것과도 같아서, 주변 사람들이 날 떠올리는 계기가 된다. 누군가가 뭔가를 보고 날 생각해주다니, 조금 부담스러운 듯하다가도 입이 귀에 걸린다. 


그런데 점점 소화 능력이 떨어지면서 음식을 실제로 먹어야만 그 갈증이 채워지는 건 아니라는 걸 배운다. 먹고 싶은 걸 다 먹지 못하는 대신 점심 메뉴를 추천해주는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지금은 또 먹는 것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그러니까 음식에 대한 글이 떡순이처럼 내 식탐을 대리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나는 맛있는 게 너무 좋아요!"라고 세상에 외치면서 식탐이 한층 더 성장하고 있다는 것도 깨닫고 있다. 내가 먹었던 음식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며 의미를 부여하고, 앞으로는 또 뭘 먹을지 열과 성을 다해 계획하게 되기 때문이다. 원초적인 식탐을 뛰어넘어서 이제는 생각하는 식탐을 갖게 된 걸까? 좋아하는 걸 드러내고, 그게 왜 좋은지 파고들기 시작하면 좋아하는 마음이 어느새 포켓몬처럼 진화하고, 궁극적으로는 좋아하는 그 대상이 곧 나의 정체성이 된다. 엄마의 가르침대로 나의 식탐을 꽁꽁 숨겼다면 이런 깨달음도 영영 얻지 못했겠지.


여기까지 식탐을 조심하라고 배운 아이가 먹는 것에 대해 열렬히 이야기하는 사람이 된 이야기였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탐하는 건 무엇인가.


정재민 @jam.in

먹고 마시기 위해 사는 사람. 직장인들이 슬기롭게 점심시간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점심 메뉴와 대화 소재를 추천해주는 뉴스레터 <슬기로운 점심시간>을 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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