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먹어도 맛있습니다]#3 커피&영양제: 각박한 일상 속 기력 부스터 / 정지음

2022-04-13



이번 주는 내내 까닭 없는 두통에 시달렸다. 진통제를 두 세알씩 삼켜도 별 효과가 없었다. 딱히 든 것도 없는 머리가 어찌하여 아플까? 친구에게 하소연하자, 뜬금없이 오늘 커피를 마셨냐는 질문이 따라왔다. 생각해 보니 요 며칠 아메리카노 챙기는 걸 잊었다. 친구 말로는 관자놀이가 팽팽하게 지끈대는 이 느낌이 카페인 금단일 수 있단다. 또 나를 놀리는 줄 알았는데 검색해 보니 진짜였다. 오미크론 후유증일 거라 생각했던 피로감, 졸음, 구역질 등등도 대표적인 카페인 금단 증상들이었다. 

 

주유하듯 커피를 들이키면서, 이렇게 절대적인 것이 정녕 기호 식품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기호 식품' 하면 제일 먼저 커피와 담배가 떠오르는데, 경험 상 두 가지 다 의지로 끊기가 쉽지 않았다. 일단 시작하고 나면 이후부터는 내 결정에 달린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커피를 좋아한다'는 표현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나는 커피를 필요로 한다' 정도가 맞는 문장 아닐지. 어쩌면 '커피가 나를 필요로 한다'고 말해야 옳을 지도 모른다. 커피는 오렌지 쥬스를 참듯 참아지지 않고, 오렌지 쥬스처럼 입 속을 간지럽히지도 않는다. 다만 내가 커피 마실 시간을 어길 때마다 쩌렁쩌렁 머릿속에 통증을 울릴 뿐이다.

 

비슷한 느낌의 물질로는 영양제가 있다. 나에게 꼭 필요한 비타민 C, 비타민 D, 밀크씨슬, 오메가3는 먹을 때 티가 나는 것들이 아니었다. 다만 멈췄을 때 온몸에 찾아오는 과부하를 통해 그것들의 효용을 알 수 있었다. 몸이 이상하게 비실비실하고, 힘이 나지 않고, 피곤하고 졸리면 영양제를 마지막으로 먹은 시간이 언제인지 세어 볼 필요가 있었다. 밀린 알약들을 추려 삼키면 어쩐지 곧바로 씩씩해진 기분이 들곤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플라시보 효과'라는 말을 매우 낭만적으로 여겼기 때문에, 지금 느껴지는 힘이 플라시보라 한들 별 상관은 없었다. 힘이 난다는 생각 자체가 나의 힘이었다. 

 

커피나 영양제를 몸에 넣고 언제쯤 기력이 돌아올까 살피다 보면, '몸'이라는 것의 물성 자체가 하찮아졌다.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면서부터 더더욱 자주 하는 생각들이었다. 나는 늘 내 멋대로 산다며 의기양양했지만, 실상 새끼 손톱만큼 작은 커피콩, 그보다 더 작은 알약, 그보다 훨씬, 훨씬, 훨씬 작은 화학 성분들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여기에 술이나 탄수화물의 압도적 중독성까지 고려한다면 내 몸은 사실 제대로 내 것일 때가 없다고 봐야 옳았다. 

 

어릴 땐 새해가 될 때마다 모든 것을 끊자는 다짐에 시달렸다. 어떻게든 체력을 키워서, 외부의 도움이라고는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은 내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자, 커피나 영양제 같은 것들이 있어 그나마 사람 구실 하고 산다는 안도가 앞서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끊어내는 식으로 나를 통제하지 않는다. 차라리 어떤 커피를 마시고 어떤 회사의 영양제를 먹을지 신중하게 고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료로 얻을 수 있는 힘에 한계가 있다. 별 수 있나, 힘 내서 벌고 벌기 위해 힘을 내고…… 그런 일상이 반복될 뿐이다. 




정지음 @jee_umm

작가. 1992년 5월 출생. 에세이 『젊은 ADHD의 슬픔』『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를 썼습니다. 일년의 반은 대충 먹고 나머지 반은 공들여 먹습니다. 먹는 일에 기쁨과 피로를 동시에 느끼며 살아가는 1인 가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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