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08



지난달 친한 언니의 생일에 편지를 썼는데, 이런 내용이었다. 요즘은 일상에 여유가 생긴 모양인지 '나는 왜 이렇게 외롭나!', '이렇게 외롭게 일생을 살아야 한다니!'와 같은 생각을 하며 눈물 바람인 날이 잦다, 곁을 지켜주는 이들이 있는데도 외롭다니 주변 사람들에게 참 미안한 생각이지만… 아니! 이렇게나 외로운데 이 와중에 주변 사람들까지 생각하며 외로워해야 한다니. 요동치던 감정을 토로했더랬다. (생일인 사람에게 축하는 못 할 망정 투정이나 부렸다. 그래도 맺음말은 정신적 건강과 육체적 건강이 가장 중요하니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는 말로 정리했다. 다행이다.)


곧 답장을 받았는데, 이런 내용이었다. 우리는 모두 나만의 오롯한 짐을 진 채 수행에 가까운 길을 걷는 듯 하다, 이렇게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은 나 뿐인 것 같지만 시선을 돌리면 모두가 각자의 짐을 진 채로 걷고 있더라, 한 발짝 떨어져 생각해보면 결국 혼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편지에 곁들일 동화책 한 권까지 선물 받았다. 자리에 주저앉아있던 나는 답장만으로도 일어설 힘을 얻었는데 이 책까지 읽으니 뛸 힘을 얻은 것과 다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2021)은 외로움과 고독을 곱씹어보게 만드는 영화다. 진아는 "전 혼자가 편해요."라며 말을 걸어오는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생각하는데, 어느 날 옆집 남자가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으며 단조롭던 일상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전화상담원으로 근무하는 진아의 일과는 다음과 같다. 출근 후 콜을 받고, 점심으로는 혼자 쌀국수를 먹고, 퇴근하며 편의점 도시락 하나를 사와 24시간 내내 끄지 않은 TV 앞에서 무덤덤하게 먹고 잠자리에 든다. 사망한 옆집 남자는 물론, 바람을 피워 집을 나갔다 돌아온 아버지, 사교성 좋은 신입 직원 수진은 귀찮고도 신경 쓰이는 이들이다. 특히 새로 이사 온 옆집 남자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스스럼 없이 말을 걸더니 사망한 남자의 제사를 지낼 예정이라며 안내문까지 나누어준다. 여기에 더하여 자신이 차갑게 대했던 수진까지 무단결근을 하자, 진아는 자신의 마음 주변에 쌓아둔 벽 너머의 바깥 세상을 슬쩍 넘겨다보기 시작한다. 


영화를 꽉 채우던 쓸쓸하고도 건조한 기운은 진아의 점심 메뉴로 비춰진 쌀국수를 차가운 음식 모형처럼 보여준다. 그릇 옆에 세워져 먹방 영상을 내뿜던 휴대폰 화면도 한몫 한다. 그러나 음식을 음미할 시간 마저 빼앗은 외로움은 이내 다스릴 수 있을만한 고독으로 바뀌는데, 이 과정은 진아를 뒤흔들고 만다. 수진과의 점심 식사 때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수진이 신입 교육을 받던 날 중 어떤 하루, 여느 때처럼 쌀국수 가게로 향하던 진아는 점심 식사를 같이하자며 쫓아오는 수진을 내치지 못하고 함께 가게 된다. 가게 구조는 중앙에 오픈된 주방을 두고 디귿 자로 둘러앉은 형태인데, 수진과 나란히 앉아 식사하는 게 불편했던 진아는 이미 양옆에 사람이 앉아 가운데 자리만 남아버린 빈자리에 가 앉는다. 수진이 자신의 바로 옆에 앉지 못하도록 말이다. 함께 식사하러 왔으니 당연히 옆자리에서 먹을 거라 생각했던 수진은 이 황당한 상황에 우물쭈물하다 결국 진아와 한참 떨어진 자리에서 식사하게 된다. 이후 진아는 고독의 과정을 지나며 일전에 수진이 앉았던 자리에서 쌀국수를 먹는다. 그리고 수진이 느꼈을 외로움의 맛을 깨닫는다. 


이후 진아는 휴직 신청을 하고 계획 없는 고독의 시간을 갖기로 한다. 갑자기 진아를 둘러싼 세상이 따뜻해지거나, 그래서 그의 무덤덤한 표정이 밝아지거나, 용서할 수 없던 일이 하루아침에 용서되지 않겠지만, 성가시게 했던 모든 것을 마주해 자신을 위로할 한 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그건 진아의 말로 알 수 있다. 평소의 진아라면 상상할 수도 없었을 그 말. "정리되면 밥이나 같이 먹어요."


외로움에 사무쳤던 이유를 가만히 생각하며 삶의 핀이 꽂힌 곳을 본다. 핀은 타인에게 꽂혀있다. 나 자신보다 타인과의 조우를 우선으로 하니, 마치 외부가 훤히 보이는 유리 상자 안에 갇혀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군중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것과 같았다. 이내 핀을 빼내 나에게 꽂으니, 마침내 나는 나와 조우한다. 단숨에 외로움으로부터 빠져나올 수는 없지만, 진아처럼 고독을 연습해본다. 외로움의 맛을 걷어내 고독으로의 음미를 시작하는 것처럼.


ⓒ 더쿱




주혜린 @sandwichpress.kr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공부를 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의지가 이끄는 것을 수집하고 탐구하는 출판사 샌드위치 프레스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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