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먹어도 맛있습니다]#2 집밥: 튜닝의 끝은 순정 / 정지음

2022-03-30


'집밥'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따뜻하고 다채로우며 수북한 느낌이 물씬 풍겨온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엄마밥'의 정의가 아닐까 싶다. 요리에 서투른 내 집밥은 항상 초라하다. 어떤 음식이든 덜 익거나 너무 익어 곤죽이 되니 식감 같은 고급 옵션을 추구할 수도 없었다. 나는 오랜 시간 배달 어플 VIP로서 내 스코어를 자랑스러워하며 살았다. 주방 기구에 먼지들이 뽀얘도 임금님 수랏상 같이 먹고 지내는 데에 만족했다. 그러나, 딱 20대까지만이었다. 나는 분별 없는 외식과 음주에 절여진 자취 생활 10년 동안 서서히 건강을 망쳤다. 30대가 된 내게 남은 것은 과체중 딱지와 굶든 먹든 항상 불편한 위장, 여전히 아무것도 만들 줄 모르는 두 손과 텅 빈 지갑 뿐이었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다짐이 100만 번 쯤 반복되었을 때, 나는 어쩔 도리 없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제 집밥은 취향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배달 어플을 뒤적이는 대신 마트에서 장을 보고, 계란, 두부, 팽이버섯, 오이, 방울토마토, 냉동 야채믹스처럼 만만한 재료부터 쓸어 모았다. 의외로 고기를 자주 사진 않았는데, 어쩌다 생고기를 썩히고 충격적인 냄새를 맡아본 후의 교훈이었다. 마침 채식을 시작한 친구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나는 완전한 채식에는 자신이 없었지만, 이왕 식습관을 바꾸는 김에 채식 흉내 정도는 해볼 수 있었다.

 

말이 좋아 건강식이지 직접 메뉴를 짜고, 짠 대로 조리해 먹는 일은 무척 성가셨다. 부차적으로 설거지나 음식물 쓰레기 문제까지 따라왔다. 내가 만든 음식은 여전히 맛이 없고 이상했기 때문에 나는 자주 급식이나 엄마밥을 그리워했다. 먹고 살자고 세상에 나가 돈을 벌면서, 정작 잘 먹기 위한 노력에는 왜 이리 부아가 치미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시일이 지나면서 엉망진창 집밥에도 적응이 되었다. 내가 만든 밥에서 맛 이외의 의미를 발굴한 덕분이었다. 애초에 나는 배달 음식 때문에 망한 것도 아니었다. 사실 배달 음식에 무슨 죄가 있겠는가? 배달 음식 또한 누군가 열과 성을 다해 완성한 먹거리일 뿐인데. 다만 나의 패착은 의식주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중요한 식생활을 아무 분별없이 외주화했다는 데 있었다. 너무 쉽게, 스마트폰 터치 만으로 끼니를 해결하니 먹는 행위 자체의 존엄이 떨어진 것이었다. 화려하게 먹고 산다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무렇게나 먹고 산 날들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집밥을 만드는 행위는 위대했다. 모든 과정에 심사숙고가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무엇을 먹겠느냐?'는 결국 '무엇을 먹지 않겠느냐?'는 물음이기도 했다. 나는 우선적으로 습관적인 육류와 밀가루, 국물 섭취를 줄이고 있다. 너무 기본적이라 딱히 내세울 것도 없는 규칙이다. 채소를 먹어야한다는 강요에는 항상 거부감이 들었는데, 고기와 면, 찌개를 줄인 자리에 자연스레 채소가 들어오는 것은 괜찮다는 사실에 신기해하는 중이다.

 

오늘도 다소 초라하고 밍밍한 식사를 위해 냉장고를 뒤적이는데 문득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명제가 떠오른다. 한 끼니에 3-4만원을 지르고도 만족을 모르던 나의 식탁도 결국은 최대한 순정에 가까워지고 있다. 어찌 보면 나의 살찐 몸도 (내가 원치 않았던) 튜닝이 아닐지. 식탁을 바꾸면 몸도 천천히 순정의 상태로 돌아오진 않을지 기대를 해본다.




정지음 @jee_umm

작가. 1992년 5월 출생. 에세이 『젊은 ADHD의 슬픔』『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를 썼습니다. 일년의 반은 대충 먹고 나머지 반은 공들여 먹습니다. 먹는 일에 기쁨과 피로를 동시에 느끼며 살아가는 1인 가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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