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그리움의 음식]#1 지켜야 하는 전설의 음식 / 주혜린

2022-03-11


한겨울의 바람보다 봄을 맞이하는 막바지 겨울의 바람은 훨씬 차갑다. '안돼! 이대로 갈 순 없어!' 하는 겨울의 마지막 외침처럼 닿는다. 계절을 보내주고 맞이하는 이맘때면 아버지는 "밖에서 어묵 국물이라도 하나 마시면서 몸을 녹이렴."하고 용돈을 쥐여주시곤 했다. 막바지 겨울에 어묵 국물을 먹어야 하는 건 일종의 의식과 같아졌는데, 이제는 길거리 음식을 맘껏 접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아쉬움만 쌓여가던 차였다. 아아. 겨울의 끝자락에도 가슴속에 품은 몇천 원이 고이 남아있는 상황이라니. 큼지막한 무와 대파를 넣어 끓인 어묵은 물론, 튀기듯 구운 기름 호떡과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붕어빵, 문어 다리를 품은 동그랗고 탱탱한 타코야키 등 여름부터 기다리던 길거리 음식인데 말이다. 속 깊은 곳부터 차오르던 길거리 음식을 향한 사랑은 영화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21기: 엄청 맛있어! B급 음식 서바이벌!>(2013)을 보던 순간 펑 터지고야 말았다. 


이른 아침, 유치원에 갈 준비를 하던 짱구는 방송 프로그램 <B급 음식 대축제>에 매료된다. 흑돼지 버거, 군만두 우동, 꼬치구이, 오코노미야키, 야키소바 등이 모여있는 이곳은 그야말로 즐거움의 장이니 말이다. 짱구와 친구들은 축제의 하이라이트 음식인 '소스의 달인 야키소바'를 먹고자 길을 떠난다. 그러나 그 시각 행사장은 B급 음식을 처치하겠다는 A급 요리 기구의 습격으로 엉망이 되는 중이고, 난동에 휘말린 이들은 판세를 바꿀 '전설의 소스'를 배달하게 된다. 캐비어, 송로버섯, 푸아그라와 같은 A급 요리 빌런의 음식을 뚫고 소스를 무사히 배달하며, 최종 목적지에서 기적의 야키소바를 함께 만들어 먹는 것으로 B급 음식을 지켜낸다.


5살 난 어린이들이 고군분투하며 지켜낸 훌륭한 음식 앞에 어째서 26개의 알파벳 중 두 번째에 위치한 'B'를 사용한 'B급'이라는 접두어를 붙이냐며 반감이 들 참이었다. 그러나 B급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달리 실제 B급이라고 일컫는 음식의 수준과 인지도는 낮지 않았다. 일본에서의 B급 음식은 1980년대부터 'B급 구루메(B級グルメ)'라는 전문 용어로 불리며, 저렴한 재료로 값싸고 빠르게 만드는 데다 맛까지 좋은 서민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서 '구루메(グルメ)'는 프랑스어로 미식을 뜻하는 'gourmet'에서 비롯되었는데, 어찌 되었든 B급 음식도 미식의 반열에 속한 음식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애니메이션 속 A급 요리 기구의 수장인 ‘로열 황태자'는 파인 다이닝에서 여유롭게 즐기는 A급 음식을 통하여 구루메의 칭호를 독차지하고자 일련의 사건을 일으킨 듯했다. 그러나 B급 음식은 A급 음식이 쉽게 내어주지 않는 미식의 지점을 찔러 이미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걸 어쩌겠는가!


짱구는 친구들과 함께 전설의 소스를 지켰지만, 영화 바깥에서는 미처 지키지 못한 길거리 음식이 사라지고 있다. 계란빵, 길거리 토스트, 컵밥, 닭꼬치 등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가는 음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전설의 소스를 지켜야 할까. 짱구와 친구들이 기적의 야키소바를 만들어 먹은 것처럼, 해를 걸친 외로움의 종식이 오는 때에 모두와 함께 추억의 음식을 나누어 먹고 싶을 뿐이다. 그동안의 나는 언젠가 즐겨 먹었던 것들이 가지고 있는 맛, 모습, 기억 모두 지키고 있어야겠지.



ⓒ 짱구는 못말려 / Lotte entertainment




주혜린 @sandwichpress.kr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공부를 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의지가 이끄는 것을 수집하고 탐구하는 출판사 샌드위치 프레스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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