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를 또 먹어요?]#1 그 해 여름_ 7년동안 일했으니 7개월은 쉬기로 했다 / 만오데

2022-03-09


작년 여름 내 마음의 정원에 자주 번개가 내리치고 비가 내렸다.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재택근무와 작고 큰 회의들, 여러 감정이 순식간에 오가는 채팅방 때문에 우리 집에서 가장 큰 공간인 거실을 차지하고도 숨이 막히던 그런 날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하루였다. 온종일 노트북이 뿜어대는 열기와 윙윙거리는 소리, 식탁을 가득 채운 회의 자료들, 노트북에 빼곡히 붙여진 포스트잇, 푹푹 내쉬는 한숨에 휩싸여있던 나를 말없이 보던 엄마는 얼음이 가득 담긴 유리잔을 톡톡 치더니 이렇게 말했다. "지금 그 일, 그만해도 괜찮은 거야. 지금 꼭 해야 하는 건 니 나이에 니가 제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걸 찾는 거야."


집안 구석구석 파고든 오후 4시 즈음의 여름빛을 바라봤다. 그 어떤 계절보다도 좋아하는 여름의 한가운데인데, 하루 종일 목적이 불분명한 일을 ‘완료’라는 목적을 가지고 혼자 끙끙거리고 있는 내가 좀 웃겼다. 아니 슬펐다. 됐고! 오로지 나에게 잘 보이고 싶었고! 나의 행복을 위해 움직이고 싶었다. 여름밤 창문을 열어 나른한 밤공기를 흠뻑 마시고 나니 나의 몸과 마음이 오랜만에 다시금 또렷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 다음 조금 울었다. 기분 좋게 활짝 핀 하늘을 등지고 한달음에 달려가 퇴사를 선언하고 나오며 전화를 걸었다. "엄마, 만두에 맥주 콜?"


고속터미널 근처 '봉산옥'에 도착하자마자 스무스하게 만둣국 김치말이 국수 그리고 오징어순대를 주문한다. 이곳엔 멋진 베레모를 쓰고 계신 할아버지, 분명 연차를 냈겠지만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하고 있는 휴가인, 그리고 예비 백수와 예비 백수 엄마가 있다. 만둣국이 나온다. 12시간 이상 끓여낸 차돌 양지 국물과 배추와 숙주 그리고 돼지고기가 꽉 차있는 큼지막한 황해도식 만두 5알. 슴슴한 만두와 맑은 육수는 일요일 오후에 씹는 과일맛 풍선껌처럼 혀에 착착 달라붙는다. 듬뿍 올려진 양지 고명을 만두 위에 조금씩 곁들여 먹으면 은은한 육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이 집 최애 별미는 오징어순대인데, 새콤달콤한 오징어채 무침에 찹쌀과 각종 야채가 꽉 차 있는 노릇노릇하게 부쳐진 황금빛 계란옷을 입은 그분이 탑스타 마냥 우쭐대며 테이블에 위에 오른다. 응당 맥주 한 병을 추가로 주문했다. 


"니 인생 니가 결정한 거니까 별말은 안 할게. 근데 후회할 걸? 그럼 그냥 좀 후회해! 그래도 니는 더 성장할 거야." 엄마의 마지막 길고 따뜻한 건배사로 확실한 해방감에 취해있던 그날 저녁, 인스타그램을 열어 아직 가보지 못한 만두집들을 하나하나 다시 꺼내봤다. 만두로운 여름방학의 시작이다! 야호! 


7년간 서울을 누비며 다양한 회사들의 숙제, 고민을 해결하는 일을 했다. 밥 먹듯 야근, 밥 먹듯 외근.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해도 나는 쏙 빠진 채 일만 남은 날들이 있었다. 내 마음 한번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하루가 쌓일수록, 더욱 맛있게 느껴지는 만두와 그 시간을 함께해준 사람에게 하루치 기분을 몽땅 기대어버렸다. 집에 돌아와서는 그날의 기분을 기록했다. 그날의 모든 걸 붙잡고 싶어서. 그래야만 내일이라는 하루를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면, 왜 만두여야 했을까. 왜 이렇게 만두가 좋고 만두 이야기만 하면 좋은 기분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걸까. 내가 몸담았던 광고, 마케팅 분야와 만두 만드는 일이 비슷한 모양새라 느껴졌던 적이 많았던 탓이다. 만두를 만드는 과정에 손이 많이 가고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정말 많은 사람들과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지지고 볶는 뜨거운 과정을 오래도록 사랑해왔기 때문에. 퇴사 7개월 차, 무사히 행복하고 많이 웃고 먹는다. 굳이 특별해지려 노력하지 않는 일상의 힘을 다시 한번 느낀다. 곧 황홀한 갭이어를 마치고 갭투자를 향해 달려갈 테지만. 확실한 건 하루 종일 얼음이 가득 담긴 유리잔 옆에서 일하다가 겨우 밤공기를 마시던 그 해 여름, 나는 나랑 뜨겁게 손을 맞잡고 제대로 한 발자국을 떼었다는 것.


오늘도 우리 엄마는 이른 아침 종이신문에서 91년생 양띠 운세를 확인한다. 


91년생: 

마음이 안락하니 모든 일이 순조로이 이루어지고 

희망적일 것이다.


오늘 나의 운세는 전적으로 내편이다. 




ⓒ 만오데




만오데 @mandoo_of_the_day

7년간 성실히 회사와 집을 오가다 ‘더 이상 이렇게는 싫어’를 외치곤 돌연 퇴사, 황홀한 갭이어를 보내고 있다. 지붕 아래 똑같은 만두와 돈까스가 없다는 생각으로 조선팔도를 뚜벅이로 먹어내고, 걸어내는 중이다. 배 빵빵 마음 빵빵한 풀자극의 시절이 퍽 마음에 든다.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하는 삶을 꿈꾸며 운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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