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녀왔던 여행지를 떠올리면 그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음식이 뒤따라 떠오른다. 베를린의 쌀국수와 케밥, 도쿄의 편의점 스지와 에그 샌드위치, 강릉의 생대구탕 같은 것. 가깝지만 먼 제주에도 나의 영혼을 위로하는 음식이 있는데, 다름 아닌 프렌치 요리와 내추럴 와인이다. 돔베고기도 고등어회도 아닌.
동거인이 제주에 출장을 갔을 때였다. 일이 바빠 동행하지 못한 나는 그가 보내온 공항과 바다와 고등어회 사진을 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는 돌아오는 날 마지막 식사로 제주시 쪽의 프렌치 레스토랑에 간다고 했다.º 웬 프렌치? 한참 내추럴 와인에 빠져있던 때라 내추럴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 솔깃했지만, 제주에서 프렌치 요리는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는 내가 여길 좋아할 거라며 다음에 같이 오자고 했다.
일 년이 흘러 우리는 제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여행 중 한 끼는 그곳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바다 근처가 아닌 빌라 사이를 지나자 적갈색 벽돌 건물이 보였다. 흰색과 빨간색이 섞인 차양과 따뜻한 나무 문. 좋아하는 조도로 밝혀진 공간에는 붉은 소파와 빈 와인병으로 가득 찬 나무 선반이 벽을 두르고 있었다. 바닥에 깔린 불규칙한 모양의 테라조 타일도 마음에 들었다.
자기만의 오라를 가진 가게에 들어서면, 그때부터의 순간은 또 다른 여행처럼 느껴진다. 강렬하지만 차분하게 꾸며진 이곳이 그랬다. 저마다의 테이블에 앉아 조용히 식사하는 다른 손님들의 모습마저 하나의 경험이 되는 거다. 안내된 자리에 앉자마자 두근대기 시작했다. 길다면 긴 미식 생활로 나름의 촉이라는 것이 생겼다. 단번에 알 수 있다. 내가 이곳을 좋아하게 될지, 다신 오지 않을지. 코스의 기분이 나도록 기승전결에 어울리는 메뉴들을 잔뜩 주문했다. 반시 부라타 치즈 샐러드로 기분과 식욕을 돋우고, 어니언 수프로 몸을 데운 다음, 바삭한 껍질의 오리 스테이크로 만족스럽게 배를 채우고, 더는 못하겠다 싶은 기분을 즐기며 초콜릿 무스 떠먹기.
주문한 요리와 어울릴 거라며 추천받은 와인을 한 병, 두 병 비웠고 와인이 아주 맛있었다는 사실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때로 정말 맛있는 조합을 만나면 세세한 맛은 기억나지 않는다. 집중하고 싶은 대화처럼 그저 눈앞의 것들에 충실하는 거다. 슬슬 취기가 오르는 도중 생각했다. '제주에 올 때마다 여기와야 할 것 같다. 아직 여기 앉아 있는데도 벌써 그립다구.' 그리고 그렇게 됐다. 제주 하면 프렌치 요리, 그리고 내추럴 와인. 그다음 여행에서 나는 이곳에서 식사하기 위해 비행기 일정을 미루게 된다.
º 이곳은 제주시 사라봉7길 32에 위치한 '르부이부이'라는 곳입니다. 사라봉길이라는 이름마저 마음에 들어요.

ⓒ 문진희
문진희 @daljinhee
서울에서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몰랐던 이야기를 알게 될 때 세상과 조금씩 오해를 풀어가는 기분이다. 그때 그거 뭐였지? 왜 있잖아… 말하고 싶은 단어만 쏙 빼고 모든 것을 기억하곤 한다. 누군가에게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만들어 가고 싶다.
다녀왔던 여행지를 떠올리면 그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음식이 뒤따라 떠오른다. 베를린의 쌀국수와 케밥, 도쿄의 편의점 스지와 에그 샌드위치, 강릉의 생대구탕 같은 것. 가깝지만 먼 제주에도 나의 영혼을 위로하는 음식이 있는데, 다름 아닌 프렌치 요리와 내추럴 와인이다. 돔베고기도 고등어회도 아닌.
동거인이 제주에 출장을 갔을 때였다. 일이 바빠 동행하지 못한 나는 그가 보내온 공항과 바다와 고등어회 사진을 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는 돌아오는 날 마지막 식사로 제주시 쪽의 프렌치 레스토랑에 간다고 했다.º 웬 프렌치? 한참 내추럴 와인에 빠져있던 때라 내추럴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 솔깃했지만, 제주에서 프렌치 요리는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는 내가 여길 좋아할 거라며 다음에 같이 오자고 했다.
일 년이 흘러 우리는 제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여행 중 한 끼는 그곳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바다 근처가 아닌 빌라 사이를 지나자 적갈색 벽돌 건물이 보였다. 흰색과 빨간색이 섞인 차양과 따뜻한 나무 문. 좋아하는 조도로 밝혀진 공간에는 붉은 소파와 빈 와인병으로 가득 찬 나무 선반이 벽을 두르고 있었다. 바닥에 깔린 불규칙한 모양의 테라조 타일도 마음에 들었다.
자기만의 오라를 가진 가게에 들어서면, 그때부터의 순간은 또 다른 여행처럼 느껴진다. 강렬하지만 차분하게 꾸며진 이곳이 그랬다. 저마다의 테이블에 앉아 조용히 식사하는 다른 손님들의 모습마저 하나의 경험이 되는 거다. 안내된 자리에 앉자마자 두근대기 시작했다. 길다면 긴 미식 생활로 나름의 촉이라는 것이 생겼다. 단번에 알 수 있다. 내가 이곳을 좋아하게 될지, 다신 오지 않을지. 코스의 기분이 나도록 기승전결에 어울리는 메뉴들을 잔뜩 주문했다. 반시 부라타 치즈 샐러드로 기분과 식욕을 돋우고, 어니언 수프로 몸을 데운 다음, 바삭한 껍질의 오리 스테이크로 만족스럽게 배를 채우고, 더는 못하겠다 싶은 기분을 즐기며 초콜릿 무스 떠먹기.
주문한 요리와 어울릴 거라며 추천받은 와인을 한 병, 두 병 비웠고 와인이 아주 맛있었다는 사실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때로 정말 맛있는 조합을 만나면 세세한 맛은 기억나지 않는다. 집중하고 싶은 대화처럼 그저 눈앞의 것들에 충실하는 거다. 슬슬 취기가 오르는 도중 생각했다. '제주에 올 때마다 여기와야 할 것 같다. 아직 여기 앉아 있는데도 벌써 그립다구.' 그리고 그렇게 됐다. 제주 하면 프렌치 요리, 그리고 내추럴 와인. 그다음 여행에서 나는 이곳에서 식사하기 위해 비행기 일정을 미루게 된다.
º 이곳은 제주시 사라봉7길 32에 위치한 '르부이부이'라는 곳입니다. 사라봉길이라는 이름마저 마음에 들어요.
ⓒ 문진희
문진희 @daljinhee
서울에서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몰랐던 이야기를 알게 될 때 세상과 조금씩 오해를 풀어가는 기분이다. 그때 그거 뭐였지? 왜 있잖아… 말하고 싶은 단어만 쏙 빼고 모든 것을 기억하곤 한다. 누군가에게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만들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