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그리움의 음식]#4 식지 않는 따뜻한 온도의 커피 / 주혜린

2022-04-22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를 재개했다는 기사에 달린 불만을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하필이면 출근길에 시위를 해야 했는가, 택시 비용까지 사용했는데도 지각을 했다, 목적은 옳지만 방법은 옳지 않다 등 날선 불평이 쏟아졌다. 곧장 해결할 수 없는 안타까운 일을 볼 때면 그저 응원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한 것은 물론, 그들의 입장이 단 한 번도 되어보지 않은 내가 감히 그러한 고통에 공감하기도 송구할 따름인 것이었다. 내가 겪은 일이든 겪지 않은 일이든 하나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서로를 마땅히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 연대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끼는 순간이었다.


영화 <로렐>(2016)은 '로렐'이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뒤 자신의 동성 연인 '스테이시'가 사후 연금 수령인이 될 수 있도록 분투하는 내용을 담았다. 로렐은 뉴저지 최초의 여성 부서장이 되기 위하여 몸을 사리지 않고 일하는 23년 차 베테랑 형사다. 로렐이 첫눈에 반한 자동차 정비공 스테이시가 그와 같은 여성이라는 것, 19살의 나이 차가 있다는 것, 그 모든 것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둘이 서로의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 중요할 뿐. 사랑만 해도 시간이 부족한 때에 로렐의 옆구리 통증은 폐암 말기라는 진단을 불러왔고, 혼자 남게 될 스테이시가 자신의 사후 연금을 수령해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움직이는 로렐의 의회 청원기가 이어진다. 이 과정에 경찰 동료인 데인과 토드를 비롯하여 인권 운동 단체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이들의 사랑에 연대한다. 


연대를 말하는 또 다른 영화 중에 다큐멘터리 <카페 소스페소: 모두를 위한 커피>(2017)가 있다. 영화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시작된 커피로의 연대를 보여준다. 이탈리아인들에게 커피는 아무리 힘들어도 매일같이 마시는 대상이다.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곧 사회와 만나는 순간이 되므로, 이는 단순한 음료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정체성과도 같은 커피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다큐멘터리 속에서 조명한 연대의 방식인 '소스페소'의 탄생 이유인 것이다. 이 활동은 카페를 이용한 사람이 커피 한 잔 값을 추가로 결제하고 떠나면, 삶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무료 커피가 제공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카페 소스페소에는 타인을 향한 압도적인 응원과 지지가 가득 담겨 있고, 오가는 커피는 세상의 그 어느 커피보다도 따뜻한 온도를 지니고 있다.


두 편의 영화를 보며, 불현듯 어린 시절에 했던 놀이 '마니또'가 생각났다. 비밀 수호천사가 되어 친구가 좋아하는 선물을 준비하는 놀이인데, 한 친구로부터 받았던 '향기 나는 미피 펜 세트'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당시에는 혁신에 가까운 문구였다. 펜에서 향기가 나다니!) 필기하는 것을 참 좋아하지만 성적은 좋지 않아 참담한 반비례 현상을 보이던 내게 마니또는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혜린아! 너는 글씨를 잘 쓰니까 공부도 잘 할 거야! 화이팅!". 결국 지금까지도 재미나게 공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친구가 건넨 응원의 힘은 막강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힘껏 지지하고 싶은 날이다. 이유 모를 힘듦에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싶어진 날, 과거의 일을 꺼내 자책하고 아파하는 날, 순간의 선택을 후회하는 날들을 지나 이 순간까지 살아낸 당신은 몹시 대단한 사람이므로.


ⓒ 더쿱




주혜린 @sandwichpress.kr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공부를 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의지가 이끄는 것을 수집하고 탐구하는 출판사 샌드위치 프레스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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