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먹어도 맛있습니다]#1 혼술: 알코올 대장군의 혼술 일대기 / 정지음

2022-03-16


갓 스무살 꼬마 숙녀 시절에는 이상한 내숭을 부리고 다녔다. "난 사람들하고 자리하는 게 즐거워 마시는 거지, 술이 좋아서 마시는 건 아냐." 물론 뻥이었다.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아서인지 나는 곧 훌륭한 알코올 의존자가 되었다. 타고난 주량이 센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부단한 연습과 반복을 거쳐 악으로 깡으로 이겨냈고 그것을 술에 대한 통제력으로 착각했다.

 

나는 곧 모든 술자리에 능한 사람이 되었다. 친구, 가족, 직장 동료, 애인 그리고 다시 그들의 친구, 가족, 직장 동료……. 정말 아무나랑 다 마시고 다녔는데, 거의 매번 필름이 끊겼으므로 다음날 저녁쯤이면 마시지 않은 것과 같아졌다. 카톡 친구 목록이 뚱뚱해질수록 일상은 말라 비틀어졌다. 몸통의 과체중, 영혼의 저체중. 문제가 많았으나 왜인지 나는 계속 술하고만 싸워댔다. 나는 알코올계의 대장군이었고 최종 격전지는 '혼술'이었다. 십 년 전에는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친구들을 불러 모았는데 이제는 혼자이기 위해 일부러 사람들을 거절하고 있다.

 

술은 늘 나를 더 용감하게, 유머러스하게,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한……2병 까지는. 신기하게도 2병을 넘어서면 나는 나의 적군이 되었다. 스스로에게 망신을 주거나, 넘어지거나, 조그만 규모의 자연 재해처럼 날뛰었다. 그럴 때의 나는 주둥이로 칼춤을 추는 사람 같았다. 다음 날 깨어나 어제를 복기할 때면 칼춤을 추다 칼 위로 자빠진 사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혼술은 그런 면에서 적절했다. 곁에 누가 없으니 사람에게 말실수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가끔 스마트폰으로 시공간을 초월한 비대면 실수를 벌이기도 했으나 무엇도 대면 실수에 비할 것은 아니었다.

 

혼술의 끝도 대개는 우울이었고, 언젠가 부터는 그 우울조차 일종의 콘텐츠가 되어갔다. 점점 나빠지는 내 안에 나를 구경하는 내가 따로 있었다. 나는 취하는 식으로 무감해지며 나를 떠나는 중이었다. 그런 날 현실로 메다꽂은 것은 뜬금없게도 '탈무드'였다. '술의 기원'이라는 챕터에서 허락도 없이 쓰인 내 얘기를 적발(?)한 것이었다.

 

'……포도주를 처음 마시면 양처럼 순해진다. 더 마시면 사자처럼 광폭해지고, 더 마시면 돼지처럼 더러워진다. 도를 넘으면 원숭이처럼 춤 추고 노래하게 되는데, 포도주는 악마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홧홧한 수치심을 느꼈다. 양으로 시작해 원숭이로 끝나는 자동화 코스를 매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나이기도 하고, 양이기도 하고, 사자, 돼지, 원숭이기도 하다면 아무리 혼자 마셔봤자 혼자가 아닌 셈이지 않은가? 내가 맨날 사람의 몸으로 애니멀 파티를 벌이고 있다면……. '혼술'이란 명명 또한 일종의 오류가 아닐지……? 해당 의문에 답을 찾지 못한 나는 머쓱해져 혼술을 멈추었다. 가끔 마시긴 하지만, 혼자 술 마시며 해대는 온갖 상념들이 '메에에, 어흥, 꿀꿀, 우끼끼!' 정도로 느껴져 지속할 수가 없다. 언제나 나는 웃음이 필요할 뿐, 우스꽝스러워지고 싶은 건 아니다. 알코올이 없는 다른 액체들로 건조한 밤을 적셔간다.




정지음 @jee_umm

작가. 1992년 5월 출생. 에세이 『젊은 ADHD의 슬픔』『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를 썼습니다. 일년의 반은 대충 먹고 나머지 반은 공들여 먹습니다. 먹는 일에 기쁨과 피로를 동시에 느끼며 살아가는 1인 가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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