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양파가 한 알 있다.
조리대 앞의 나는 양파를 노려보며 생각한다. 양파는 썰어야 하지만 칼질은 안 하고 싶다. 꼭 썰어야 한다면, 채썰기, 다지기, 깍둑썰기 조금씩 다 하고 싶다. 내가 뭘 내켜할지 모르니까. 레시피엔 반 개만 쓰라고 돼 있지만 하나를 다 쓰고 싶다. 냉장고에 들어간 남은 재료에게 미래란 없으니까. 약불에서 오래 볶으라는데, 그렇게까지? 센 불로 간다.
단언컨대, 요리를 맛있게 하고 싶다는 열망보다 간단히 하고 싶다는 열망이 큰 사람은 절대로 요리왕이 될 수 없다. 요리왕은커녕 요리 일반인 정도만 되려 해도 수년의 수련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은 그냥 속 편하게 사 먹으면 되는데, 문제는 아무리 맛있는 것만 골라 먹어도 매식하는 날이 주 5일을 넘기면 지치게 된다는 거다. ‘음식점'이라는 환경 자체가 피로해지는 것이다. 그럴 땐 내 것이 아닌 물건,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형광등 아래에서 밥을 먹는 게 탐탁잖게 느껴진다. 그냥 내 집에서 신발도 양말도 벗어던진 맨발로 먹고 싶다. 배달을 시킬 수도 있겠지만, 나는 끝내 배달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주문을 하고 배달원을 기다리고 현관문을 열고 음식을 집고 불필요한 포장을 푸는 일련의 과정이 모조리 피곤하다. 쓰레기가 생기는 것도 쓰레기를 정리하는 것도 싫다. 매식에 드는 비용도 적잖다. 사 먹는 음식은 간도 대체로 세다. 양이 적거나 많다. 그냥, 밥 한 끼 먹기 위해 치러야 하는 이 모든 상황에 소모되는 내 에너지가 너무 많다.
그래서 요리를 시작했다. 어쩔 수 없어서 시작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요리 실력이 생겨버렸다. 그 사실이 굉장히 자랑스러워서 그간 정립한 나만의 노하우를 다짜고짜 공개하는데,
1. 한 번 할 때 많이 한다. 적어도 세 끼는 때우겠다는 생각으로.
2. 육고기나 해산물류에는 되도록 도전하지 않는다.
3. 두부, 버섯, 달걀, 애호박, 토마토 같은 부드러운 재료들로 시작한다. 단, 양배추 같은 커다란 식자재 앞에서는 일단 후퇴.
4. 센 불만 써도 되는 요리를 하자.
5. 소금을 사용하자. 짜야 맛있다.
6. 유행하는 도구나 요리책을 당당하게 사들여라.
7. 조금 멋 내고 싶은 재료들도 구비해둔다. 일단 내 손에 들어오면 어떻게든 활용하게 된다. 2년째 우리 집 부엌에 있지만 아직 열어보지 않은 중국 식초가 약간 신경 쓰이지만.
8. 설거지 거리가 적은 요리를 택하고, 먹고 나면 곧장 설거지를 한다.
9. 한식은 사 먹는다.
‘잘 먹는다’는 의미가 맛있는 걸 먹는다거나 몸에 좋은 걸 챙겨 먹는 거라면 내 요리는 크게 의미가 없다. 같은 시간을 투자했을 때 내가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것들과 비교하면 성과도 소득도 적다. 요리할 시간에 친구를 만날 수도, 영화나 전시회를 볼 수도, 하다못해 누워서 잘 수도 있었을 텐데 기껏 평범한 맛이나 나는 요리를 하느라 이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내다니. 그런데 이 비생산적인 시간도 쌓이니 의지할 구석이 된다. 이렇게 못하는 게 많은데, 이렇게 바쁘고 힘든데 왜 아무도 날 챙겨주지 않나 습관적으로 침대에 엎드려 울고 싶다가도, 곰곰 생각해보면 딱히 눈물은 안 난다. 뭘 울어. 하면 되지.
라면이나 술안주로 끼니를 때울 때보다는 자기 연민에 덜 빠지며 산다. 힘들고 어려운 마음들을 어떻게든 넘어왔다. 따지고 보면 잘했다. 잘 먹고 잘 사는 건 멀었어도 일단은 별 일 없이 산다! 고 다짜고짜 소리치고 싶어 지는데, 진짜로 소리치기 전에 가서 양파나 썰어야겠다.

ⓒ 임유청
임유청 @moriapt
영화 산업 가장자리에서 일하는 회사원. 퇴근 후 일과는 쓰거나 마시기. 영화 보고 술 마신 이야기 『테크니컬러 드링킹: 까마귀의 모음 2집』과 베를린 친구집에 놀러가서 술 마신 이야기 『mori in progress: 까마귀의 모음 1집』을 만들었다.
여기 양파가 한 알 있다.
조리대 앞의 나는 양파를 노려보며 생각한다. 양파는 썰어야 하지만 칼질은 안 하고 싶다. 꼭 썰어야 한다면, 채썰기, 다지기, 깍둑썰기 조금씩 다 하고 싶다. 내가 뭘 내켜할지 모르니까. 레시피엔 반 개만 쓰라고 돼 있지만 하나를 다 쓰고 싶다. 냉장고에 들어간 남은 재료에게 미래란 없으니까. 약불에서 오래 볶으라는데, 그렇게까지? 센 불로 간다.
단언컨대, 요리를 맛있게 하고 싶다는 열망보다 간단히 하고 싶다는 열망이 큰 사람은 절대로 요리왕이 될 수 없다. 요리왕은커녕 요리 일반인 정도만 되려 해도 수년의 수련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은 그냥 속 편하게 사 먹으면 되는데, 문제는 아무리 맛있는 것만 골라 먹어도 매식하는 날이 주 5일을 넘기면 지치게 된다는 거다. ‘음식점'이라는 환경 자체가 피로해지는 것이다. 그럴 땐 내 것이 아닌 물건,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형광등 아래에서 밥을 먹는 게 탐탁잖게 느껴진다. 그냥 내 집에서 신발도 양말도 벗어던진 맨발로 먹고 싶다. 배달을 시킬 수도 있겠지만, 나는 끝내 배달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주문을 하고 배달원을 기다리고 현관문을 열고 음식을 집고 불필요한 포장을 푸는 일련의 과정이 모조리 피곤하다. 쓰레기가 생기는 것도 쓰레기를 정리하는 것도 싫다. 매식에 드는 비용도 적잖다. 사 먹는 음식은 간도 대체로 세다. 양이 적거나 많다. 그냥, 밥 한 끼 먹기 위해 치러야 하는 이 모든 상황에 소모되는 내 에너지가 너무 많다.
그래서 요리를 시작했다. 어쩔 수 없어서 시작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요리 실력이 생겨버렸다. 그 사실이 굉장히 자랑스러워서 그간 정립한 나만의 노하우를 다짜고짜 공개하는데,
1. 한 번 할 때 많이 한다. 적어도 세 끼는 때우겠다는 생각으로.
2. 육고기나 해산물류에는 되도록 도전하지 않는다.
3. 두부, 버섯, 달걀, 애호박, 토마토 같은 부드러운 재료들로 시작한다. 단, 양배추 같은 커다란 식자재 앞에서는 일단 후퇴.
4. 센 불만 써도 되는 요리를 하자.
5. 소금을 사용하자. 짜야 맛있다.
6. 유행하는 도구나 요리책을 당당하게 사들여라.
7. 조금 멋 내고 싶은 재료들도 구비해둔다. 일단 내 손에 들어오면 어떻게든 활용하게 된다. 2년째 우리 집 부엌에 있지만 아직 열어보지 않은 중국 식초가 약간 신경 쓰이지만.
8. 설거지 거리가 적은 요리를 택하고, 먹고 나면 곧장 설거지를 한다.
9. 한식은 사 먹는다.
‘잘 먹는다’는 의미가 맛있는 걸 먹는다거나 몸에 좋은 걸 챙겨 먹는 거라면 내 요리는 크게 의미가 없다. 같은 시간을 투자했을 때 내가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것들과 비교하면 성과도 소득도 적다. 요리할 시간에 친구를 만날 수도, 영화나 전시회를 볼 수도, 하다못해 누워서 잘 수도 있었을 텐데 기껏 평범한 맛이나 나는 요리를 하느라 이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내다니. 그런데 이 비생산적인 시간도 쌓이니 의지할 구석이 된다. 이렇게 못하는 게 많은데, 이렇게 바쁘고 힘든데 왜 아무도 날 챙겨주지 않나 습관적으로 침대에 엎드려 울고 싶다가도, 곰곰 생각해보면 딱히 눈물은 안 난다. 뭘 울어. 하면 되지.
라면이나 술안주로 끼니를 때울 때보다는 자기 연민에 덜 빠지며 산다. 힘들고 어려운 마음들을 어떻게든 넘어왔다. 따지고 보면 잘했다. 잘 먹고 잘 사는 건 멀었어도 일단은 별 일 없이 산다! 고 다짜고짜 소리치고 싶어 지는데, 진짜로 소리치기 전에 가서 양파나 썰어야겠다.
ⓒ 임유청
임유청 @moriapt
영화 산업 가장자리에서 일하는 회사원. 퇴근 후 일과는 쓰거나 마시기. 영화 보고 술 마신 이야기 『테크니컬러 드링킹: 까마귀의 모음 2집』과 베를린 친구집에 놀러가서 술 마신 이야기 『mori in progress: 까마귀의 모음 1집』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