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에 왜 해장국집이 많은지 알아? 육지 사람들이 제주만 오면 그렇게 술을 많이들 마시거든." 아, 그렇구나. 제주도민 친구를 만나 팩트 폭행당한 육지 사람은 지금껏 외면해온 본인의 만취 역사를 줄줄이 떠올려버렸다. 생각해보니 역대급 숙취로 고통받던 날들은 대부분 제주도에서 시작되었다. 술 마신 다음날 여행 내내 차 뒷좌석에 누워 기절해 있던 것도, 숙취에 뱃멀미까지 와서 여객실 바닥 한가운데 대자로 뻗었던 것도, 핸드폰을 심하게 망가뜨려 제주 시내 AS센터까지 찾아가 리퍼폰을 받은 것도 다 그곳에서 만들어진 흑역사다.
술을 좋아하는 마음만큼 주량이 세지 않은 사람들은 알 거다. 마시다 보면 슬슬 취기가 올라오는데, 이때 신난다고 조금만 더 나갔다가는 다음날 일상생활이 불가해지는,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서울에서는 집에 안전하게 들어가야 하니까,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 술병 나면 일상에 지장 있으니까, 여러 가지 이유로 악으로 깡으로 정신줄을 꽉 붙잡고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줄타기한다. 그런데 유독 제주에만 내려가면 자제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런 술자리에는 나의 주종목인 맥주도, 마신 다음날 머리 아프다고 소문난 막걸리도, 도수 높은 소주나 양주도 아닌, ‘한라토닉’이 늘 있었다.
한라토닉은 제주도 지역 소주 한라산에 토닉워터를 타 마시는 소주 칵테일이다. 알코올의 쓴 맛을 줄이고 달달한 탄산을 더해 꿀떡꿀떡 마실 수 있는 청량감이 가장 큰 매력이다. 그 시원한 목 넘김이 내가 제주도에 내려갈 때마다 느끼는 해방감과 비슷한 것 같다.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새파란 바다처럼, 도심 속에서는 느끼지 못한 상쾌한 바람처럼, 제주도의 시원함을 내 입 속에 파도처럼 마구마구 밀어 넣고 싶어 진다. 맛은 또 왜 이렇게 술 같지도 않게 달콤한지. 몇 잔을 연거푸 마시다 보면 술의 파도를 타는 서퍼가 된 것 마냥 신나서 말도 행동도 감정도 다이내믹해진다.
놀러 와서는 굳이 억지로 버틸 필요 없으니까. 마음이 원한다면 정신은 잠깐 놓아버려도 되니까. 이렇게 살짝 나사 풀린 자아는 오직 제주도에서 한라토닉 몇 병을 비우고 나서야만 만날 수 있다. 평소 늘 달고 사는 체면, 책임감, 눈치 같은 걸 다 벗어던지고 떠났을 때만 나오는 나. 아직 잘 살아있음을 느끼는 내 안에 다른 나.
그런 나는 딱 요맘때의 제주도가 그립다. 바닷가 억새풀 뒤로 지는 노을을 보며 제철 방어회를 떠다가 한라토닉을 원 없이 말아먹고 싶다. 딱 하룻밤만 안전하게 취해서 바보처럼 실없이 웃고 떠들고 놀고 싶다. 애써 꽉 물고 버티고 있는 이성의 끈을 살짝 놓아버리러 나의 섬으로 떠나고 싶다. 아, 숙취해소제와 다음날 해장국 코스는 미리 단단히 준비해놓고.

ⓒ 이리터
이리터 @jc_highlight
가끔 마시러 떠납니다. 맛있는 커피와 맥주가 있는 곳 어디든 찾아 갈 준비가 돼있습니다. 지난 음료들의 맛과 분위기, 한 모금 들이키고 난 후의 생각들을 브런치 매거진 <지도 위에 별표>와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jc_카페투어'로 기록합니다.
"제주에 왜 해장국집이 많은지 알아? 육지 사람들이 제주만 오면 그렇게 술을 많이들 마시거든." 아, 그렇구나. 제주도민 친구를 만나 팩트 폭행당한 육지 사람은 지금껏 외면해온 본인의 만취 역사를 줄줄이 떠올려버렸다. 생각해보니 역대급 숙취로 고통받던 날들은 대부분 제주도에서 시작되었다. 술 마신 다음날 여행 내내 차 뒷좌석에 누워 기절해 있던 것도, 숙취에 뱃멀미까지 와서 여객실 바닥 한가운데 대자로 뻗었던 것도, 핸드폰을 심하게 망가뜨려 제주 시내 AS센터까지 찾아가 리퍼폰을 받은 것도 다 그곳에서 만들어진 흑역사다.
술을 좋아하는 마음만큼 주량이 세지 않은 사람들은 알 거다. 마시다 보면 슬슬 취기가 올라오는데, 이때 신난다고 조금만 더 나갔다가는 다음날 일상생활이 불가해지는,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서울에서는 집에 안전하게 들어가야 하니까,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 술병 나면 일상에 지장 있으니까, 여러 가지 이유로 악으로 깡으로 정신줄을 꽉 붙잡고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줄타기한다. 그런데 유독 제주에만 내려가면 자제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런 술자리에는 나의 주종목인 맥주도, 마신 다음날 머리 아프다고 소문난 막걸리도, 도수 높은 소주나 양주도 아닌, ‘한라토닉’이 늘 있었다.
한라토닉은 제주도 지역 소주 한라산에 토닉워터를 타 마시는 소주 칵테일이다. 알코올의 쓴 맛을 줄이고 달달한 탄산을 더해 꿀떡꿀떡 마실 수 있는 청량감이 가장 큰 매력이다. 그 시원한 목 넘김이 내가 제주도에 내려갈 때마다 느끼는 해방감과 비슷한 것 같다.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새파란 바다처럼, 도심 속에서는 느끼지 못한 상쾌한 바람처럼, 제주도의 시원함을 내 입 속에 파도처럼 마구마구 밀어 넣고 싶어 진다. 맛은 또 왜 이렇게 술 같지도 않게 달콤한지. 몇 잔을 연거푸 마시다 보면 술의 파도를 타는 서퍼가 된 것 마냥 신나서 말도 행동도 감정도 다이내믹해진다.
놀러 와서는 굳이 억지로 버틸 필요 없으니까. 마음이 원한다면 정신은 잠깐 놓아버려도 되니까. 이렇게 살짝 나사 풀린 자아는 오직 제주도에서 한라토닉 몇 병을 비우고 나서야만 만날 수 있다. 평소 늘 달고 사는 체면, 책임감, 눈치 같은 걸 다 벗어던지고 떠났을 때만 나오는 나. 아직 잘 살아있음을 느끼는 내 안에 다른 나.
그런 나는 딱 요맘때의 제주도가 그립다. 바닷가 억새풀 뒤로 지는 노을을 보며 제철 방어회를 떠다가 한라토닉을 원 없이 말아먹고 싶다. 딱 하룻밤만 안전하게 취해서 바보처럼 실없이 웃고 떠들고 놀고 싶다. 애써 꽉 물고 버티고 있는 이성의 끈을 살짝 놓아버리러 나의 섬으로 떠나고 싶다. 아, 숙취해소제와 다음날 해장국 코스는 미리 단단히 준비해놓고.
ⓒ 이리터
이리터 @jc_highlight
가끔 마시러 떠납니다. 맛있는 커피와 맥주가 있는 곳 어디든 찾아 갈 준비가 돼있습니다. 지난 음료들의 맛과 분위기, 한 모금 들이키고 난 후의 생각들을 브런치 매거진 <지도 위에 별표>와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jc_카페투어'로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