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닭거리]#4 3053년의 닭가슴살 스테이크 / 김혜경

2021-10-29


퇴근하면 고민 없이 치킨을 주문하던 날들이여 안녕. 요즘 나는 끼니마다 ‘닭가슴살 스테이크’를 먹고 있다. 스테이크라는 이름이 붙어 있긴 한데 미디엄 레어 따위로 굽기를 선택할 수 있는 ‘소고기 스테이크’ 쪽은 아니고 고기를 갈아서 한 덩어리로 뭉쳐 동그랗게 구워내는 ‘햄버그 스테이크’ 쪽이다. 그렇다고 뜨거운 플레이트 위에서 자글자글 소리를 내며 기름기 어린 육즙을 뿜어내는 모습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이 ‘닭가슴살 스테이크’는 어디까지나 다이어터들을 위한 냉동 간편식이니까.


맛이 없다고 하기엔 애매하다. 애초에 다이어트의 반대 극에 있는 배달 치킨과는 비교할 수 없을뿐더러, 이 제품은 대한민국 다이어터들의 간편식을 책임지고 있는 닭 가슴살 오픈 플랫폼 ‘랭킹닭컴’에서 출시 이래 반년이 넘도록 무려 판매량 1위를 유지하고 있으니까. 대한민국 국민이 대략 5천만인데 그 두 배 이상인 1억 3천만 팩이나 팔리면서 닭 가슴살 단일 브랜드 최대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데다,º 운동 좀 한다는 연예인 역시 주저 없이 추천하고 있다. 고객 구매 후기 역시 5만 개 가까이 등록돼 있는데, 맛없는 단백질에 시달리던 수많은 이들이 제작사에 감사를 표하며 추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º 2021년 4월 기준의 조사 결과다.


그렇지만 이 제품의 훌륭함과는 별개로, 먹을 때마다 자연스레 치킨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본질적으로는 이것도 치킨, 그러니까 닭고기니까. 겉이 딱딱한 냉동제품이어도 뼛속까지는 다를 수 없으니까. 나는 내가 아는 가장 이상적인 치킨의 형태-바삭바삭한 튀김옷을 입은 프라이드, 아니, 적어도 숯불에 구워 촉촉하게 육즙이 살아있는 굽네 치킨-를 떠올리게 되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차갑다. 뜨거운 김이 나는 치킨 박스와는 다르게 살얼음이 서걱거리는 봉지를 집을 때면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 식사하는 느낌이다. 그간 배달 치킨을 통해 체지방을 무작정 늘린 과거의 내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현재를 견딜 수 없는 나는 스스로를 더 먼 미래로 내던진다. 그러니까, 내가 3053년쯤의 미래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는 것이다. 


영양학적으로 완벽하게 설계된 신비의 알약으로 식사를 대체하게 된 3053년. 나는 미뢰가 제 쓸모를 잃어버릴 지경인 삭막한 사회에서도 음식을 씹어 먹던 식사의 본질을 추억하는 낭만적인 사람이다. 물론 구할 수 있는 것은 몹시 한정적이다. 그러니까 닭 가슴살 71.21%에 양파, 두류가공품, 복합 조미식품1, 복합 조미식품2, 대파, 옥수수전분, 마늘… 이 들어간 100g, 140kcal 짜리 ‘닭가슴살 스테이크’ 같은 것.


동그란 닭가슴살 스테이크 위에 가로 새겨진 BBQ 그릴 자국을 보며 나는 ‘요리’의 흔적을 뒤쫓으려 애쓴다. 지글지글 타오르는 숯불의 열기, 점점 먹음직스러운 색으로 변모하는 스테이크, 선명하게 새겨지는 그릴 자국, 숯 위로 뚝뚝 떨어지는 기름방울과 매캐하게 퍼지는 고소한 연기… 그러나 모든 것은 꾸다 만 꿈처럼 흐릿하다. 별 수 없지, 지금은 3053년인걸.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날, 비로소 배달 치킨의 육즙이 흐르는 2021년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 랭킹닭컴



김혜경 @hkyoe

회사 다니고 팟캐스트하고 글 써서 번 돈으로 술 마십니다. 『아무튼, 술집』『시시콜콜 시시알콜: 취한 말들은 시가 된다』를 썼습니다. 시 읽으며 술 마시는 팟캐스트 <시시알콜>에서 술 큐레이터 DJ풍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먹고 마신 것은 적당한 영양소와 많은 똥으로 분해되어 사라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 행복한 사람으로 만든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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