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유없는 술은 없다]#4 수직낙하 중, 소주의 중력 / 김경윤

2021-10-21


인생의 바닥은 상대적이다. 나는 바닥인 줄 알았는데 상대방에게는 꽤 튼튼한 계단의 한 칸일 수도, 나는 열심히 오른 산 중턱인 줄 알았는데 상대방에게는 잡초 가득한 언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에게 낙하감은 절대적이지 않을까? 발을 헛디디든, 굳게 잡고 있던 동아줄이 스스로 썩어 끊어지든, 위에서 아래로 추락 중이라는 실감만큼은 누구에게든 아픈 일일 것이다. 자주 떨어질수록 맷집이 생겨 조금은 여유롭게 떨어지는 방법도 터득해가는 나이지만, ‘수직낙하’했던 순간은 잊을 수 없다. 

 

입사 후 2년 간 참여했던 두 개의 프로젝트가 출시 단계에서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이번이 마지막이다!’ 라며 동아줄이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준비한 세 번째 프로젝트까지 전무 단에서 물을 먹은 날이었다. “우리 서비스 개발하지 말래. 아쉽게 됐지만 어쩔 수 없고, 어떤 프로젝트 들어갈지는 나중에 업데이트해줄게.”라는 보고 결과를 듣고, “네, 알겠습니다.”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무력함에 분노하며, 할 일이 없어졌으므로 일찍 셔틀버스를 타고 퇴근하던 길. ‘그럴 줄 알았다’는 회의주의와, ‘앞으로 하는 것마다 이렇게 되려나?’ 싶은 비관주의가 나를 덮고 또 덮었다.

 

낙하하는 기억의 감칠맛에는 빨간 소주가 있다. 그날의 나는 여럿이 아니고서야 잘 마시지 않던 빨간 소주를 샀고, 닭발과 오돌뼈를 매운맛으로 배달시켰다. “맛있는 걸 왜 혼자만 먹니, 부모님도 같이 먹자.” 라며 농을 치려던 부모님도, 내핵을 뚫고 내려가는 중인 나의 기운을 감지하고 더 말을 걸지 않으셨다. 나는 방에 들어와 문을 잠그고 컴퓨터 책상에 빨간 소주와 안주, 그리고 두루마리 휴지를 올려두었다.

 

그리고 소주를 따는 순간부터 울었다. 진짜 내 인생은 왜 이러는 거야. 왜 이렇게 안 풀리는 거야. 뭘 잘못했길래 이러는 거야. 중얼대며 크게 울다가 소주를 한 번에 털어 넣고, 또 울다가, 코를 풀고, 오돌뼈를 먹기를 반복했다. 맵고 짜고, 쓴 맛에 눈물과 콧물까지 함께 어우러지니 전혀 유쾌한 맛은 아니었으나, 액운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의식으로서는 꽤 적합했다. 나는 소주 한 병을 비우고 난 후, 취기에 더욱 북받쳐 설거지를 하면서도 울고, 잠에 들면서도 울었다. 낙하감에 소주를 부어 대니 정말 수직으로 낙하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새벽 여섯 시, 다시 출근. 머리가 지끈거렸고, 맵고 짠 것을 잔뜩 울면서 먹었으므로 눈과 온 몸이 퉁퉁 부어 있었다. 손에 잡히는 옷을 대충 입고 집을 나서, 셔틀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어제는 세상이 무너졌었는데, 오늘은 내 책상도, 같이 일하는 상사들도 그대로였다. 숙취와 함께 유야무야 하루를 버틴 후, 퇴근하던 셔틀버스 안. 문득 내 상황에 웃음이 났다. 무엇하러 속 아프게 소주를 들이부었나 싶기도 하고, 그렇게 슬펐으면서 얄팍하게 해장은 하고 싶다는 것도 웃기고.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지만 거대한 비극이 사소해진 느낌이었다. 나는 내장기관이 주는 신호들을 위로 삼아, 그렇게 낙하감을 한 번 겪어냈다.


힘들 때 소주가 생각나는 것은 미디어가 만든 조건반사 같지만, 나 또한 미디어에 흠뻑 길들여진 인간이므로 이따금 소주를 찾게 된다. 하지만 소주를 마실 때 보다, 오히려 다음날 숙취를 받아내며 하루를 버틸 때 위안을 얻고는 한다. 그래 이게 바닥이든, 언덕이든, 천국이든. 아무리 떨어져도 아직 지구는 나를 (숙취로라도) 끌어당기고 있으니까. 떨어져도 다시 한번 더 해보자는 생각. 소주가 내 삶에 주는 중력이 있는 한, 앞으로의 낙하감은 조금은 덜 아프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 김경윤



김경윤 @casperk0816

이상주의와 먹고사니즘 사이, 적당한 타협점을 찾으며 살아가는 직장인. 집중력이 짧고, 기억력이 나쁜 탓에, 먹고/마시고/듣고/보는 유희적이고 직관적인 취미와 일을 선호한다. 구 맥주 브랜드 매니저, 현 커피 마케터. 모쪼록 열심히 살고, 기분 좋게 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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